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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News Article about Terra Han

Terra Han, the kayageum player who graced our gala concert last October of 2013 spent busy months in Korea. Her upcoming recital was recently picked up by a prominent music columnist for one of the premier Korean news papers. [한국일보 2014.03.24 A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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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주자 한테라와 그의 스승 작곡가 강석희 [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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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가야의 우륵에서 21세기의 강석희까지, 가야금 주자 한테라(32 韓泰來)가 기꺼이 떠안은 예술의 업보는 문자 그대로 시공을 초월한다. 재즈 뮤지션도 모자라 전위적 색소폰 주자 존 존(John Zorn)마저도 자연스레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그녀를 만나 변신이란 말은 상투어가 된다. 분명 본인에게는 살짝 뒤척임, 즉 번신(飜身)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변혁의 연속이었다. 길지 않은 세월 안에 이뤄낸 그 눈부신 궤적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숨가쁠 지경이다.

영어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를 보는 편이 더 낫겠다. ‘한테라(Han Terra)’라고 검색해 보자. 정통에서 전위까지를 망라하는 사실(fact)들이 긴 두름으로 엮여 있다. 전통과 변혁은 이렇게 공존할 수도 있는 법인가. “10대 초반에 성금연 최옥삼 김죽파 가야금 산조 전바탕을 떼고, 가야금 수석으로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장 추천제 수시 전형으로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 등. 국내 주요 경력의 뒤를 “2010년 가야금 연주자로는 최초로 미국 록펠러 재단 장학생으로 선정”이라는 새 이정표가 잇는다. 뉴욕 문화와의 해후는 필연이었던 셈이다.

그 곳에서 실험ㆍ즉흥ㆍ전위 음악의 진수와 그는 충돌했다. 현대 재즈의 거물 존 존은 물론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등 미니멀리즘의 거장들이 그 가야금에 감복했다. 이를 테면 존의 소감은 이러했다. “(테라가)내게서 받은 음악적 영향이 있다면 오히려 내가 감사할 지경이다.”

뉴욕 거주 직전, 일본으로 건너 가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고토, 샤미센 등 일본의 전통 악기들을 배우고 가야금으로 일본 고유의 음악을 해석했다. 맛보기를 넘어선, 문화 교류의 참 의미를 새삼 새기게 하는 행보였다.

그가 맘 먹고 서울에 왔다. 물과 불의 공존을 보여주려는 듯, 정통과 진보를 아우른다. 옴니버스 식의 구색 갖추기가 아닌, 자신의 본령을 확인하고 천명하는 자리다.

지난 7일 서울 이유진갤러리를 필두로 닻을 올린 갤러리 콘서트가 19일 대전 갤러리이안, 20일 서울 갤러리담을 거쳐 4월 19일 잠실 롯데갤러리 등지로 이어지는 일정이 먼저다. 15세까지 스승 김일륜에게서 전수 받은 성금연, 최옥삼, 김죽파 류 등 전통 가야금의 주류를 확인하는 현장이다. 이번 내한 공연은 뉴욕, 도쿄, 파리 등지에서 5개 국어를 구사해 가며 벌인 갤러리 연주회의 근황을 확인할 기회다. 이상은 그의 절반이다.

또 다른 절반, 현대 음악과의 연관에서 우리는 달의 이면과 맞닥뜨린다. 현재는 4월 중순께로 출발점이 잡혀 있는 ‘한테라의 가야금 Révélation(계시ㆍ폭로ㆍ재발견이라는 뜻의 불어)’. 바로 앞에 그는 ‘세계적작곡가 강석희 팔순 기념 헌정 음악회’라는 짧은 팻말을 달아 두었다. 가야금 현대음악연구회도 뜻을 함께 한다. “연주회에서는 산조 가야금, 풍류 가야금, 25현 가야금 등이 등장하죠. 내 작품을 국악 쪽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80이라는 나이는 미상불 숫자에 불과한 듯, 이 왕성한 현역 작곡가는 어떤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분당에 따로 마련한 작곡 작업실 풍경은 여전하다. 밀집한 도서와 자료 탓에 품위 있게 대화하기는 애초에 글렀다. 그가 20여 년 전 주문해 만든 진공관 앰프와 수제 스피커가 이 공간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다. “저음 특성이 우수하죠.” 독일 전자음악 스튜디오는 한계치의 큰 소리를 수시로 구사하는 까닭에 청력이 멀쩡한 전자음악 작곡가가 없다, 독일 스튜디오가 학문적이라면 프랑스는 실용적이다 등등 현대 음악계의 뒷풍경을 전하는 노작곡가의 거동이 조금은 불편하다. 동짓달 눈 많이 오던 날, 길 가다 미끄러져 다리를 약간 다쳤다.

“선생님을 국악적으로 오마쥬 하는 거에요. 자신의 전공 분야를 벗어난 작업인데도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건 대단한 일이죠.” 한국에서는 2010년 이후 처음인 이번 독주회의 성격을 설명한다. ‘예불’ ‘취타향’ ‘명’ ‘가야금을 위한 다섯 개의 정경’ 같은 스승의 국악적 작품은 당연히 한씨의 2004년 서울대 음대 국악과 졸업 논문 등 줄기찬 탐구의 주제였다.

‘평창의 4계’ ‘니르마나카야’ ‘부루’ 등 강씨의 대표작이 가야금으로 연주되;기는 처음이다. 한씨의 어깨가 무겁다. 작곡가가 거는 기대의 부하도 덤으로 실려 있다. “예를 들어 작곡 당시는 기계적 미니멀리즘을 구사해 차가운 선율이었던 것이 가야금 연주에 얹히니 인간미를 띠게 될 거에요.” 앵콜곡으로 비틀즈의 히트곡 ‘Get Back’이 준비돼 있다니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강씨가 1986년에 일본 도시바 레코드의 위촉으로 지어둔 작품이다.

그런데 다분히 암시적인 공연 타이틀은 무엇을 겨눈 것일까. 서양 음악의 관습을 공부한 작곡가들이 가야금을 못다 이해하고 지은 작품들에서는 어떤 이물감이 느껴지기 십상이다. 한테라는 그런 이물감이 극복됐음을 확인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크게 봐서는 산조의 본래 개념인 연주자 중심주의와 부합하는 거죠.” 8순이라는 시점적 문제를 넘어선,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야금의 특수성을 하드웨어적으로 입증하는 보기 드문 자리이기도 하다. 25현 가야금을 위해 작곡된 ‘가야금을 위한 다섯 개의 정경’은 다스름(조율)의 개념을 확장해 가야금 연주로서는 처음으로 안족(雁足)의 위치를 고쳐 연주한다. 그 같은 조옮김을 3분 안에 해 내는 광경은 분명 볼거리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노장 강석희의 미학적 선택이라는 점. 그 과정까지 음악의 일부로 받아들이자는 뜻으로 절대 즉흥이나 해프닝의 차원이 아니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사건, 즉 창작의 일부인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두 세대는 떨어진 이들의 만남은 2004년 한테라가 학사 논문을 준비하며 이뤄졌다. 당시는 기교적으로 난곡(難曲)이었던 강씨의 가야금 곡 ‘다섯 개의 정경’에 대한 분석을 애송이 학사가 시도했다. “당시 내게는 심각했던, 현대 음악과 가야금 사이의 괴리를 극복해 보고 싶었어요.” 듣고 있던 스승, “당시 한국 악기의 연주력이 기술적으로 퇴화하고 있다고 느껴 가장 난곡을 연주하고 나면 늘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지은 곡”이라 거들었다. 가야금은 세계 혹은 음악의 본질로 나아가는 통로다.

“내 생각으로는, 강 선생님은 연주자로서의 나를 분명 좋아하실 거에요.” 한테라의 말은 칩거하듯 작업에 몰두 중인 노대가의 마음 한 켠을 따스하게 했을 것이다. 여전히 그는 대형 악보와 씨름하는 현역이다. 작곡 위촉은 여전히 그를 고무하는 자극제다. “88올림픽 개막식 때의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비롯해 내가 발표한 모든 작품은 위촉을 받은 곡이다.” 프로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 그러나 제자가 바치는 이번 콘서트는 냉철할 것만 같은 현대 음악 속에 흐르는 온기로 채워지는 자리다.

2006년 대관령음악제가 위촉한 ‘봄(평창의 사계 중)’은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과 현대의 개념이 어우러진다. 바이올린 솔로가 테라의 가야금이다. 1976년 작 ‘부루’에서는 테라의 춤과 노래까지 곁들여지니 문자 그대로 악가무의 총체극이 된다. 가야금의 몸통까지 타악기로 변한다. 모든 부위가 악기로 역할한다. 어릴 적 자신에게 책 읽어 주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구현한 이 작품이 임자를 만난 것이다.

세 개의 유파를 마스터한 소녀는 국악고 2학년으로 접어 들며 모든 게 시들해져 호기심을 잃게 됐다. 정규 과정보다 더 어려운 것을 하고 싶다는 갈증 끝에 가야금을 그만 둘까도 생각할 정도였다. 서울대 음대 국악과도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한 난제였지만, 당시 한국의 세계적 작곡가라며 친구가 알려 준 강석희의 존재는 그를 구원했다. 대학 4학년 때 친구 소개로 인사했다. “예술적인 문제에서는 민족주의자적 시각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아직도 생생해요.” 누구보다도 전통음악 수련을 견고하게 한 그에게 신지평이 그렇게 열린 것이다.

한테라의 행보를 받쳐 주는 것은 견결한 자존감이다. 해외 콘서트에서 왜 서양인들이 가장 전통적인 가야금 산조나 가진회상 등 정악 전바탕 연주에 열광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곧 있으면 가야금 세월 30년”이라 말했다. 한국 최고의 스승을 모셨고, 최소한 자기 음악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자긍심이 농축돼 있는 말이다.

“나는 편식이 싫다”. 30년 한 우물 판 그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야금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의 가야금은 그렇다면 가장 믿음직한, 신성 불가침의 용매다. 대척점에 설 지도 모르는 강석희의 작품을 연구하는 근거다. “보다 클래시컬 한 걸 하겠다는 국악인의 자긍심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 자긍심의 징표다.” 그러나 어쩌다 TV에서 부르면 모두 거절한다. 우리 것의 본질을 너무나 쉽게 변질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학생 신분 아닌 아티스트 비자로 뉴욕시 맨해튼에서 살고 있다. 2010년 록펠러재단의 아시아문화협회 (Asia Culture Counsil) 후원 아티스트로 지정된 그를 세계적 음악학자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걸어 다니는 예술품(moving work of art)”이라 일컬었다.

한국일보, 장병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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