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 sit down to write about the program of the concert and the excellent artists participating, I find my mind heavy with the latest act of violence that happened at the synagogue in Pittsburgh. Those celebratory words that I was savoring to use on this page just evaporated. So let me share a small personal anecdote in the hope of getting across how jumping into a cross-cultural current might help us chart this era even just a bit when our worst impulse as human being seems to be on the rise.
After finishing my studies, I had the chance to go to a prestigious workshop as a postdoc along with a colleague. Both of us were working on the same subject but using complementary approaches, so one might say we were in a gentlemanly rivalry. The fellow, whom I will call Andrej was sweet, if somewhat quiet and reserved. I used to be a shy person myself, so I anticipated a peaceful and scientifically fruitful week in the serene mountain area sharing the room with him.
Turns out, the whole week would become a trying time for me. It began as I entered the toilet the morning after our arrival the previous evening. Andrej had come in late and to my surprise, he had left an un-flushed toilet on me. 'Hmmm,' I thought to myself, 'what an absent-minded guy…' When the same thing happened the following morning, I began to get annoyed. The third time, I was brooding and promised myself that I will confront him. Yet, myself having been influenced by Einstein, the patron saint of the absent minded physicist, I took pause. If it were not an intentional act, I did not want to add unnecessary stress to our already rigorous week filled by daily encounters with Nobel winners and their brusque queries.
As the workshop was drawing to its conclusion, I was resigned to my morning ritual while even the hint of a smile on Andrej's face made me cringe. Naturally, our relationship became cold soon afterwards and by the year's end, both of us had moved on elsewhere, even without exchanging goodbyes. The incident gradually burrowed into the deeper recesses of my brain, resurfacing whenever I encountered a situation that reminds me of my social inadequacy.
Twenty five years having passed, I am now at an age which no longer affords me the luxury of sleeping soundly. Recently during a business trip, I was acutely bothered by the guest occupying the next room who made frequent visits to the toilet long into the night, and at the repeated flushing noises, I ended up being wide awake until dawn. Suddenly, there it occurred to me what the intrigue had been about during that workshop. I could put myself into Andrej's mind as he was done with the toilet in that small hour of the morning and was pondering on the daily calculus of whether to flush (and disturb my sleep) or not (at the cost of embarrassing himself).
One man's thoughtful choice of action had become another man's agony. A simple chat after the first incidence, initiated by either of us, would have spared us the misunderstanding. Instead, both of us preferred the comfort of keeping to ourselves, shied away from confrontation, even over-guessing each other’s thought. It was an epiphany that suddenly illuminated many other aspects of my life and character. It also provided a clue as to the puzzle I often wonder about - how a group of nice and intelligent people may end up being part of the wrong… even evil, if I am allowed to be hyperbolic.
I feel embarrassed, but I wanted to share this hard-earned lesson with Andrej, clear our misunderstandings and apologize for the ill feeling I had harbored for a long time. After Googling, I soon found out he had gone back to his home country, which at the time was not a good place to be during the waning years of the Bosnian war. Unfortunately, I could not find any public presence of him thereafter.
Am I making too much out of a simple personal misunderstanding? What does it have anything to do with culture? Next to the gravity of the events on the news these days, it is indeed a fluffy anecdote. But I hazard a guess that many instances of conflict and hostility start small, often out of even silly a personal idiosyncrasy and tunnel vision as mine, deepen into a divide when groups of people join and channel the energy into bigger agendas. At the same time, the individuals are simply being sympathetic only to their side of the breach, oblivious of what lies ahead. I believe that participating in conversation between different cultures is a meaningful way to train and inspire us to resist such a tendency. One may go even further by extending the dialog to one's old self. That is because the seemingly random events dotting one’s personal history provides the missing piece, absence of which once having prevented the younger self from correctly reading a situation or understanding other people's behavior. As a solid member of the society of sound sleep, it was difficult for my younger self to understand the way Andrej thought and prioritized his actions. Plights of insomniacs gained my attention only through my own experience of it after many years of biological aging. Now, I am cultured enough about the affliction and get how the awake-on-a-pin-drop suffers from it.
As both an immigrant and someone who happen to have worked at the intersection of many disciplines, I spent more time being a liminal presence than being square and center comfortably at home. Crossing boundaries feels often tiring, but its reward is that there is insight otherwise not available to the straight-edge folks.
Having said that, let me end by reiterating my hope that the cross-cultural experience this evening will provoke, engage, surprise, and finally open bi-directional pathways across aisles among the audience from around the world, connect with performers across the stage, even between the old- and new-selves across the gap of time. It had taken me some years before I gained that small personal insight. (and I believe I became a better person for it) Who knows? Some of you may cross such a breach during the short span of a piece being played.
Seungoh Ryu, Program Director
이번 문화제의 내용과 그 취지를 적어보려고 앉았으나 피츠버그의 유대교 예배당에서 있던 총격 참사의 뉴스를 접하고나니 축제에 관해, 그리고 참여하는 빼어난 음악인들에 대한 경애를 전하고자 담아두었던 단어들이 다 증발하고 흩어져 버렸습니다. 오늘이 인쇄를 위한 마감일인데, 대신 개인적인 작은 경험담을 통해, 우리 인간의 가장 저열한 본성이 치고 올라오는 듯한 요즘 세상에 서로 다른 문화간의 교통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관한 제 나름의 생각을 전달함으로 무리를 피하고자 합니다.
오래전 제가 아직 학생이었을때 한 동료와 함께 상당히 가기 힘든 워크숍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둘 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학위를 하고 있었는데 서로 보완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서 신사적인 라이벌 같은 관계였지요. 특히 그 친구 (Andrej 이라 칭하겠습니다)는 성격이 온순하고 내성적이었는데 저도 조용한 타입이라 앞으로 일주일 동안 평화로운 산속에서 즐겁고 많이 배우고 가는 시간이 되겠구나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그 한 주는 아주 고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착 다음날 아침에 시작이 되었는데, 전날 밤 늦게 도착한 Andrej는 옆 침대에 곤히 자고 있고,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수세를 안 한 변기가 떡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흠, 이런 어벙이가...” 하고 넘어 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똑같은 광경이 벌어지니 조금 짜증이 올라왔습니다. 세째날에는 소위 멘붕이라고 하는 상태가 왔고, 네째날에는 화가 나서 오늘은 좀 따져야겠다 생각이 드는 한편, 이 친구가 정말 아인시타인 일화처럼 뭔가에 너무 몰두해서 그러는 거면, 같은 처지에 있는 내가 이해해 줄까...그렇지 않아도 우리 둘 다 이 방만 나가면 노벨상급 교수들, 경쟁하는 연구자들 질문에 취조 당하는 죄수마냥 주눅이 들어왔는데” 하고는 결국 또 넘어갔습니다. 워크숍이 끝나갈 때쯤엔, 저는 아침마다의 그 ‘일과’에 익숙해져버린 한편, Andrej의 표정에 조금만 미소가 있는 듯 만해도 내가 무슨 업보로 이 고생이냐 하며 치를 떨게 되었지요. 그 이후 우리 관계는 쌀쌀해졌고, 곧 각자 갈 길을 가게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의 머릿 속 깊은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듯, 최근까지도 어떤 사교적인 이슈로 마음이 쓰일때마다 불쑥 생각이 나곤 했지요.
이십 오년이 지나니, 저도 밤에 깊이 잠드는게 쉽지는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비지니스 트립을 갔다가 호텔 옆 방 여행자가 밤새 어찌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소리를 내는지 거의 밤을 꼬박 새운적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 점점 밝아오는 창문을 멍하니 보고있다가 워크숍에서의 그 황당했던 경험이 뭐였는지가 갑자기 깨달아졌습니다. Andrej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해보니, 새벽녁에 일을 마치고 수세 버튼을 눌를지 말지를 놓고 미적분학 문제인양 고민하는 그가 보이는 겁니다. 그당시의 제가 얼마나 죽은 사람처럼 깊이 자는지 알았더라면 참 쓸데 없는 배려였지만 그는 저한테 민망하게 보임을 감수하면서라도 저의 평안한 수면을 존중해준 것이지요. 반면 잠 못 이루는 경험을 해 본적이 없는 저로선 그런 일에 신경을 쓴다는 자체가 의식의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사람이 깊이 살피고 취한 행동이 다른 사람한테는 두고 두고 불쾌한 경험이 되었는데, 둘 중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양해를 구한다거나 넌지시 언급을 했더라면 서로 참 편했을걸 대신 둘 다 성격 내키는대로, 어색한 대화는 피하는 길을 택한 거지요. 이를 깨닫는 순간, 제가 여태 살아온 태도와 제 성격에 관해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에 마음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선량하고 지성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 국가나 회사 심지어 종교단체도 예외없이 - 어떻게 나쁜, 더 나아가, 반인륜적인 일을 묵인하고 참여까지 하게 되는가하는 저의 오랜 의문에 뭔가 단서를 잡은 듯한 생각 (착각?) 도 들었습니다.
이제야 그 전말을 깨닫고 보니 창피한 일이지만 Andrej에게 연락을 취해 그 간의 오해를 풀고 제가 일방적으로 오래 가지고 있던 삐진 마음에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어서 Andrej의 행적을 Google 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당시 보스니아 내전의 막바지에 있던 고국 Serbia 로 귀국한 모양인데, 그 이후 학교나 공공기관에 아무런 흔적이 없어서 아쉽게도 끊겨진 고리로 남게되었습니다.
개인 경험담을 너무 길게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문화하고 무슨 관련이 있냐고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 근래의 참담한 뉴스들에 대비하면 솜털마냥 가벼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많은 다툼과 혐오감등이 아주 하찮은 일로 시작하여 곪아가는 경우도 많이 있는 듯합니다. 개인 성격상의 유별함이나 좁은 시각으로 한번 틈이 작게 생기고 나면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가담해서 기세가 올라가고, 그럴듯한 화두를 던져가며 굴곡을 더 깊게 만드는 재주꾼들이 끼어들죠. 보다 소극적인 개인들은 자기쪽에 익숙한 생각만 수용하면서 관망만하고. 그러다 보면 돌이키기 힘든 사고가 언젠가 생기게 되어있지요. 제 생각에 서로 다른 문화간의 대화에 참여하고 항상 깨어있는게 그러한 성향에 저항하는 훈련이기도 하고 마음과 시야를 넓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더 가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자주 대화하는 것도 바람직하겠지요. 어떤 분들은 일기를 쓰면서 하기도 하고, 옛날에 좋아했던 음악이나 소설을 다시 보면서 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자기 눈에 가려서 어떤 상황의 본질을 흐리게 보거나 역지사지를 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깊이 잠드는 사람의 문화권에서만 살아온 제가 불면증이란 단어의 뜻은 알아도 불면자 문화권 사람들의 머릿 속을 상상하는데 한계가 있었죠. 핀만 떨어져도 깨이는 사람들의 고충과 그들끼리의 마음 씀씀이는, 이십여년도 더 닳은 제 몸이 저를 반대편으로 떠밀어보낸 후에서야 제대로 그 느낌이 와 닿았다고봅니다.
저는 이민자이기도 하고 여러 분야가 맞닿는 경계에서의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 때문인지, 경계선을 넘나 드는 일이 때로는 고달프기도 하지만 소위 ‘철밥통’ 들이 지키는 경계선이 와해되는 가운데에서 많은 새로운 가치와 작품이 태어남을 보는 일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제가 기획한 이번 문화제의 내용도 이를 조금은 반영하지 않나 싶습니다. 달이고 달인 전통 음악 혹은 세계 젊은이들에게 마치 한국 음악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지는 K-Pop의 모사를 두서 없이 맛보기로 내놓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한국 문화의 온전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한번의 문화제로 다 담아내려고 하기 보다는 계속되는 가운데 기획자와 연주자들의 자율적이고 유기적인 발상으로 다양성이 쌓이고 큰 모습이 점차 잡혀가는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번 문화제에서는, 한국 전통 음악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 품아리를 박차고 나와서 이국 땅에서 경계인으로 살면서 낯선 토양에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자신의 음악생명을 내걸은 젊은이들의 음악세계를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어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들의 음악에는 한국인 누구나 익숙할 들판의 도라지꽃이 있는가 하면 고산지에서 외롭게 피어나는 솔나리꽃도 있고 경계를 알수없이 다른 여러 식물과 어우러진 덩굴이 있는가 하면 가히 그 정체를 얘기하기도 힘든 미래가 숨어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정서인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서정적인 가곡들을 보스톤의 베테랑 성악가의 해석으로 추위를 잊을까 하면 서늘한 대쪽과 같은 현대 한국의 시를 음미하는 소중한 기회도 마련하게되어 기획자로서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세어보니 이번 문화제를 준비하는데 100 여 손바닥이 마주치며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관객으로 오신 분들의 박수까지 합하면 우렁찬 소리가 나겠지요. 그 소리가 저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잡아끌고 놀래키고해서 새로이 서로 오가는 길이 많이 트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승오, 문화제 프로그램 감독